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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전시·축제

[전시]장보윤 개인전《꿈의 뒷면을 꿰매는 일》
[전시]장보윤 개인전《꿈의 뒷면을 꿰매는 일》
행사기간
2026-09-11 ~ 2026-09-20 진행중
참가비
무료
장소
아트플러그 연수
주최
장보윤
문의전화
032-858-7661
상세정보

 

[ 장보윤 개인전 ]

《꿈의 뒷면을 꿰매는 일》

 전시 장소: 
아트플러그 연수 전시실 B
운영 일정: 9월 11일(금) ~ 9월 20일(일) 까지
 운영 시간: 오전 10시 ~ 오후 6시 (입장마감 오후 5시 30분)
 휴무일: 월요일 및 공휴일

[ 전시 서문 ]

 

장면은 편집 과정에 놓인 것처럼 파편화되어 있다. 영화의 연속적 서사는 단절되고 몇몇 정지 화면만이 유령처럼 부유한다. 스틸 이미지마저 초점은 흐릿하여 화면 안에서 도대체 무슨 사건이 발생하며 인물이 어떤 맥락에 처해 있는지 포착할 수 없다.

이번 장보윤 작가의 회화는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찰리와 초콜릿 공장〉, 〈오즈의 마법사〉에서 채집한 시각적 잔영들로 구성된다. 물감은 얇게 얹혀 의도적으로 화면의 공간적 깊이를 지워낸다. 인물의 윤곽과 표정은 안개 속으로 퇴각하고 서사는 증발한다. 인간의 의식은 외부의 대상을 응시할 때조차 내면의 잡음과 주관적 망상에 압도되어 타자의 실체를 온전히 수용하지 못한다. 소통과 공론장의 투명성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이상에 가깝다. 우리가 기대하는 타자와의 일치는 찰나의 번개처럼 명멸할 뿐이다. 작가의 회화는 이 불분명한 인상을 집요하게 반복함으로써, 오늘날의 세계가 결코 투명하지 않으며 주체와 타자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화면 표면으로 증명한다. 작가의 이미지들은 하나의 공간에 사로잡히지 않은채 새로운 외부(바깥)를 만들어내고 있다.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의 관심은 결국 시선이 무엇에 가치를 부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향한다. 우리는 무엇을 오래 보고, 무엇을 빠르게 소비하며, 어떤 장면을 기억에서 밀어내는가. 회화는 정지된 화면 앞에서 이 선택을 반복하게 만든다. 나는 그 과정에서 우리가 세계와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다시 의식하게 하고 싶다.”

작가는 전작에서도 영화 《페니키안 스킴(The Phoenician Scheme)》을 모티브로 삼아 피사체와 배경의 경계가 삼투되는 얇고 모호한 형상을 탐색한 바 있다. 이번 전시 역시 불친절한 이미지로 관객의 시지각적 자동화를 흔들어 놓는다. 원작 영화를 익히 알고 있는 관객일지라도 캔버스 위의 단서만으로는 서사의 원형을 복원해내기 어렵다. 관객은 시선의 안락함을 박탈당한 채 회화의 층위를 더듬어야 한다. 이는 감정적 몰입을 차단하고 낯설게 하기를 통해 비판적 의식을 촉발했던 브레히트의 소격효과(Verfremdungseffekt)를 환기한다. 관객이 스크린의 환영에 감응하지 못할 때 비로소 획득되는 그 비평적 거리감 속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관습적 인식틀이 균열을 일으킨다. 세계를 모방하는 이미지가 관객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상태는 이미지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관객의 적극적 비평의 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인식의 자동화를 교란하는 형식적 장치로 ‘크립토폼(crypto-form)’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인다. 이 용어는 본래 제도적 서식이나 SF적 조어를 넘어, 동시대 시각예술에서는 ‘은폐·암호화된 비가시적 조형’을 의미하는 미학적 실천으로 읽힌다. 작가의 화면에서 크립토폼은 원본 디지털 이미지의 매끈한 해상도를 해체하고, 기표의 기원을 추적할 수 없도록 물성과 붓질 뒤로 숨기는 기제로 작동한다. 즉, 디지털 시각 문화의 산물이지만 관객에게 도달하는 순간 원형의 정보값이 지워진 채 오직 회화적 잠재태로만 남겨지는 것이다. 문명이 발전하고 변화할 수록 사회는 새로운 물신화에 휩싸이고 회화는 점점 더 수수께끼가 되어버린다.

작가의 화면은 사진사 초기 은판이나 유리건판에 불완전하게 맺히던 흐릿한 상(像)을 닮았다. 초고해상도 알고리즘과 AI가 인류사상 가장 선명하고 잉여적인 이미지를 폭격하듯 토해내는 시대에, 장보윤의 회화는 오히려 시각의 해상도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린다. 그것은 초점이 빗나간 렌즈의 기록이라기보다, 과잉 가시성의 시대에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세계의 불투명성과 인식의 불가능성을 역설적으로 건져 올리는 조형적 저항이다.